후삼국 통일전쟁과 신숭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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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1-1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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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이 평산 신씨의 시조가 된 것과 관련하여 한 이야기가 전해 온다. 어릴 적 이름은 능산으로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태어나, 광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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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숭겸(?~927)은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운 장군으로 평산 신씨의 시조이다. 이 때 수가 많은 후백제군이 고려 군사를 포위하여 크게 패하게 되고 왕건이 위험하게 되었다.
당시는 통일신라가 무너져가고, 견훤과 궁예가 각기 나라를 세운 후삼국 시기로, 그는 궁예가 세운 태봉의 무장으로 있으면서 왕건 등과 더불어 활약하여 많은 공을 세웠다. 신숭겸은 고려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한 개국 4공신의 한 사람으로 대장군에 올랐다. 하루는 왕건이 장군들과 평주(지금의 황해도 평산)에 사냥을 나가다 마침 기러기 세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고 `누가 저 기러기를 쏘아 맞힐 수 있는가?` 하고 물었다. 신숭겸이 화살 하나로 시키는대로 맞추어 떨어뜨리니, 왕건이 탄복하고 그 근처 땅을 그에게 주고, 그의 성씨의 본관을 평산으로 삼게 했다. 어릴 적 이름은 능산으로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태어나, 광해주... , 후삼국 통일전쟁과 신숭겸인문사회레포트 ,
신숭겸(?~927)은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운 장군으로 평산 신씨의 시조이다. 신숭겸은 왕건과 자신이 체격과 용모가 비슷한 것을 이용하여, 왕건과 갑옷을 바꿔 입고, 자신이 대신 왕건의 마차를 타고 군사들을 지휘하며 적군 속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궁예가 점차 바른 정치에서 벗어나 백성의 마음을 얻지 못하자, 신숭겸은 918년에 배현경·홍유·복지겸 등과 의논하여 궁예를 몰아내고 백성의 존경을 받던 왕건을 설득하여 왕으로 모셔 고려를 세웠다. 이 틈을 타 왕건은 포위망을 뚫고 피할 수 있었다. 그는 몸집이 장대하고 용맹스러웠으며, 지혜와 활 쏘는 재주가 매우 뛰어난 인재였다.
그후 고려 태조 10년(927)에 견휜의 후백제군이 신라에 쳐들어가자, 왕건은 신라를 도우러 신숭겸 김락 장군을 대장으로 군사 5천을 끌고 공산 동수(지금의 대구)에서 견휜과 맞서 싸웠다.후삼국 통일전쟁과 신숭겸
신숭겸(?~927)은 태조 왕건을 도와 고려를 세운 장군으로 평산 신씨의 시조이다. 어릴 적 이름은 능산으로 전라남도 곡성군에서 태어나, 광해주(지금의 춘천)로 옮겨 와 성장하였다. 후백제군은 그를 왕건으로 알고 집중 공격하였고, 그는 힘…(sk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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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에 신숭겸이 `몇번째 기러기를 맞출까요?` 하며 묻자, 왕건은 활과 말을 주고 웃으며 셋째 기러기 왼쪽 날개를 맞추라고 하였다.